취미생활들/독서정리

두번째 산

회상형인간 2020. 12. 29. 08:42

우리는 누구나 뭔가를 성취하고 나면 잠시 황홀감에 취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일시적인 황홀감과 달리 자기 자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다 내려놓는 사람에게 활기를 불어넣는 영원한 기쁨이란 것도 존재한다.

 

첫 번째 산에서 사람들이 설정하는 목표는 자신이 속한 문화권에서 규정하는 통상적인 목표이다.

 

성공하기, 남들에게 존경받기 , 제대로 된 사회 집단에 초대받기 그리고 개인적인 행복누리기 전부 통상적인 것이다.

 

사람들의 인생은 가장 큰 역경의 순간에 자기가 대응한 방식에 따라 제각기 다르게 규정된다.

 

첫 번째 산이 자아 ego를 세우고 자기를 규정하는 것이라면 두 번째 산은 자아를 버리고 자기를 내려놓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방식보다 조금 더 나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게 더 좋은 기쁨에 넘치는 어떤 삶의 방식이 존재한다. 기쁨은 현실적인 실체이다.

 

행복은 좋은 것이지만 기쁨은 더 좋은 것이다.

기쁨은 행복보다 더 풍성한 감정이다. 게다가 행복은 변덕스럽고 찰나적인 경향이 있는데 비해 기쁨은 본질적이고 영속적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기쁨을 향해 나아간다면 결국에는 올바른 지점에 다다를 것이다.

 

기쁨은 강력한 의도와 자기 망각이 만나는 지점이며 형식적으로는 바깥에 있는 듯이 보이는 것과 우리 내면에 놓여있는 것이 서로 소통하는 신체적 화학반응이다.

 

만일 사람들이 저마다 동참하고 싶어 하는 어떤 사회운동을 당신이 창조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자기가 가진 역량과 아이디어를 당신에게 쏟아 낼 것이다.

 

"나는 자유다"라는 문화 속에서 개인들은 외로우며 서로에게서 느끼는 애착은 느슨하다. 공동체는 해체되고 개인들 사이에 결속은 끊어지고 외로움은 확산된다. 이 상황은 좋은 삶을 살아가는 것 즉 사랑과 연결을 바라는 깊은 인간적 갈망을 채우는 것을 한층 더 어렵게 만든다. 특히 청년들은 더 그렇다. 이들은 구조화되어 있지 않고 불확실 한 세상에 던져진다. 믿고 의지할 권위나 방호책도 거의 없다.

 

모든 사회는 그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젊은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나름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미국 사회가 수행하는 이런 방법들 가운데 하나로 졸업식 연설이라는 세속적인 설교가 있다.

 

인생의 목적은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가 행복으로 인도한다. 듣고 있던 학생들은 그 빈상자를 내려놓는다. 무엇을 위한 자유란 말인가? 어떤길이 내가 갈 길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그들(학생) 에게 또 다른 빈상자를 건네 준다. 가능성이라는 커다른 , 그러나 역시 비어 있는 상자이다.

자기 인생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데 미래가 무한하다는 말을 들은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오히려 압박감만 커질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 빈상자를 내려 놓는다. 그들은 지혜의 원천을 찾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진정성이란 빈상자를 건네준다. "너희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라 진정한 열정을 찾아라 너희는 놀라울 정도로 멋지다" 등 이것 역시  아무 소용이 없다 '너희의 내면' 이 형성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들에게 주는 대답들이 사실은 이십 대 시절을 힘겹게 살도록 만들고 또 그들의 상태를 한층 더 나 쁘게 만든다는 것을.

'나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이지  내가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무슨 생각을 어떻게 할지 통제하는 훈련법을 배운다는 뜻.

이것은 자기가 주의를 기울일 대상을 선택하고 또 경험에서 의미를 어떻게 조직할지 선택하는 일에서 충분한 의식과 자각을 갖춘다는 뜻입니다.

성인이 되어서 이런 종류의 선택 훈련을 할 수 없다면 여러분은 엉뚱한 것들에 완전 휩쓸려 버릴 것입니다.

 

어떤 시점에서인가 가만히 앉아서 자기 인생의 전반적인 방향을 찾아야 함을 당신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은 그 알차고 커다란 질문들을 피해서 자꾸만 달아나려고 한다 그 질문들이 너무 벅차고 또 아무리 해도 해답을 구하지 못할 거 같아서다. 그래서 당신은 스마트 폰이라는 달콤한 사탕 쪽으로 자꾸만 손이 간다 자잘한 도파민의 분출을 자극하고 싶어서 말이다.

 

회사의 문화가 당신의 영혼을 만족시킨다면 훌륭하다. 그러나 만일 그렇지 않다면 당신을 구성하는 어느 작은 부분은 계속 불만족한 상태로 허기가 질 것이며 이 허기의 강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세질 것이다.

 

능력주의는 더 똑똑하고 더 많은 성취를 거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그러지 않는 척하면서 열심히 사회에 확산한다.

 

직장은 어쩌면 자기 자신을 찾기보다 더 쉽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릴 수 있는 곳이다.

무관심 또는 나태(아케디아)는 열정을 누그러 뜨린다 이것은 관심 또는 보살핌의 부족이다 인생은 여기에 있지만 마음은 멀리 다른데 가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능력주의는 사람들로 하여금 사회는 사랑하지만 정작 본인은 사랑하지 않는 삶에 빠지도록 조장한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어떤 것에 온전희 집중하고 몰두한다는 느낌을 가지기가 어렵다.

 

우리 할아버지 세대에게는 천구이 었던 개인주의가 행방의 50년 세월 동안 지옥으로 바뀌어 버렸다. 개인주의는 그동안 네 가지 서로 연관된 사회적 위기를 낳았다.

 1. 외로움의 위기

 2. 불신의 위기

 3. 의미의 위기

 4. 부족주의 위기

 

고통의 순간에 놓여 있을 때 해야 할 올바른 일은 고통 속에 똑바로 서는 것이다. 기다려 고통이 자기에게 가르치는 내용을 똑똑히 바라보라 그리고 그 고통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제대로 처리되기만 하면 축소가 아니라 확장으로 인도 해 줄 어떤 과제임을 깨달아라.

 

우리는 지금 포기의 첫 단계 새로운 자아가 떠오를 수 있도록 낡은 자아를 버리는 단계에 있다. 당신이 자기의 이상적 자아보다 훨씬 더 나은 존재임을 깨닫는 것이 바로 이때다.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는 욕구가 비롯되는 어떤 부분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욕구하는 것에 따라 정의된다. 

 

첫 번째 산의 과업들을 수행할 수 있도록 , 즉 세상 속으로 돌진해 자기 길을 해쳐 나가며 일자리를 얻고 자기의 흔적을 남기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쌓아 나가기 위해 자아의 자기를 개발한다. 하지만 이 것이 사라지기 전까지는 결코 눈에 보이지 않는 더 깊은 자기가 그 아래 존재한다.

 

자아의 자기가 소멸하고 심장과 영혼이 등장할 때 사람들은 두 번째 산에 오를 준비를 끝낸다.

 

개인주의는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데 힘쓰라고 말하지만 두번째 산에 있는 사람은 인생의 의미와 도덕적 기쁨을 추구하는데 힘을 더 쓴다.

 

개인주의는 자기를 먼저 사랑해야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번째 산의 정신은 사랑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사랑을 받아야 하며 또 자기가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알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적극 사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헌신이 당신에게 주는 것

  - 헌신은 정체성을 가져다준다.

  - 헌신은 목적의식을 가져다준다.

  - 헌신은 더 높은 차원의 자유로 나아가게 해 준다.

 

흔히 우리는 자기의 꺠닳음의 순간을 의식하지 못한다. 다만 시간이 많이 흐른 뒤 돌이켜 볼 때야 비로소 이런 순간들이 있었음을 알 뿐이다. 당신은 돌아보면서 깨닫는다.

 

어떤 것에서든 뛰어난 취향을 획득하는 방법은 늘 똑같다.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의 것과 함께 하면서 그것과 친숙해지는 것이다.

 

직관 = 패턴인식

 

나에게는 어떤 재능이 있을까? 가 아니다 이때는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 내가 하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받는 것은 무엇일까? 내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계속 더 잘하고 싶어 할 만큼 사랑하는 활동은 무엇일까?  내 존재의 근원에서 나를 사로잡을 정도로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직업을 선택할 때 흥미나 관심보다는 재능이 우선이라는 말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흥미는 재능을 키워주며 또 대부분의 경우 재능보다 더 중요하다. 직업탐구에서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결정적인 부분은 자신의 심장과 영혼 즉 장기적인 동기부여다 지식은 널려 있지만 동기부여는 희소하다.

 

자기 규율은 자유의 한 형태이다 , 게으름과 무기력으로부터의 자유이며 ,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요구로부터의 자유이며 나약함과 공보 그리고 의심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전문화에 대한 이런 강조는 사람들의 주의력을 우리 인생 전체에서 분리시키고 인생의 사소한 측면들에만 초점을 맞추게 한다. 

 

궁극적으로 보면 기쁨은 자기 욕구를 충족하는 데 있지 않고 자기 욕구를 바꾸어서 최상의 욕구를 가지는 데 있다.

교육을 잘 받은 인생은 더욱더 높은 사랑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동기는 돈도 아니고 심지어 행복도 아니며 의미라고 주장하면서 여생을 살았다. - 프랑클

 

우리는 자기 인생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위하는 공동체 적인 삶은 갈등을 기초로 해서 끈끈하고 비효율적인 인간관계를 기초로 삼아서 성립한다.

 

현대사회는 전문화 등 공동체를 잘게 부수어놓아 그 구성원들을 파편화했다 그리하여 사람들 사이에 흐르던 신뢰의 물길은 바짝 말라 버린다. 사람들은 다들 소속감을 갈망한다 그러나 이 소속감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 분명하지 않다.

과연 어떻게 공동체를 복원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는 두 번째 산에 사는 사람들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에 의해 공동체는 복원된다.

 

첫 번째 산은 개인주의 세계관으로 자아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 두 번째 산은 관계주의 세계관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으로 인간관계와 헌신 그리고 심장과 영혼의 욕구를 중심에 둔다. 우리는 스스로를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자아라고 생각함으로써 우리가 속한 사회를 갈가리 찢어버렸고, 사회에 분열과 부족주의가 팽배하게 만들었으며 , 개인적인 지위와 자족의 원리를 숭배하게 되었고 또 각 개인의 심장과 영혼 속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덮어서 보이지 않게 만들어 버렸다.

 

초 개인주의로 인해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연결의 끈이 사라지고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까?"라는 동일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초개인주의는 자유를 구속 없는 상태로 정의한다. 이렇게 해서 초 개인주의는 개인의 선택에 근거하지 않은 연대와 결속을 서서히 잠식한다 그리하여 타인과 우리 인류 전체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약화시킨다. 이런 잠식에서 비롯되는 오늘날의 중요한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사회적인 고립 , 불신 , 양극화 , 가족해체 , 공동체 소멸 , 부족주의 , 치솟는 자살률, 늘어나는 정신건강문제  , 연대감의 상실 , 공동의 이야기와 대의의 소멸.

핵심적인 결점은 이것이 인간 존재의 비하와 분쇄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소비주의는 물질적인 것을 획득하기 위해 개인에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을 잘라냈다. 능력주의는 개인적인 성공을 위해 가장 심오한 것들을 잘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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